변하는 계절, 사라진 기억들
청사 김명수
두꺼운 외투를 벗기길래 봄이라 생각했고
민소매, 구릿빛 젊은 활보에 여름 온 줄 알았는데
얼마 전 창밖의 새벽 한기가 방안을 기웃대더니
대지를 달구던 여름날의 긴 해도 떠나려 한다.
다가올 짧은 태양이 잉크 빛 창공 속에서
허약해진 두 팔로 수고로웠던 초목들 어루만져
하계에 영글던 알곡과 과실들 영면 속에 쉬게 하면
대지는 곧, 또 다른 하얀 차림으로 갈아입으리라
변해가는 계절을 놓치지 않으려 해도
언제부터인가 가슴과 피부의 기억 속에는
열화의 뜨거움, 혹한 삭풍의 차가움만 잔상으로 남아
계절의 싱그러움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더라
사랑과 보시의 넉넉함이 사라진 계절
엄동에서 부활한 꽃향기 느낄 새도 없이
이글거리는 태양과 수마 침탈에 영혼도 삭막해져
함께 나누던 가을은 이제 추억 속에만 존재한다.
2012.08. 글 / 리뉴얼 2024.0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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